통과협 워크숍 마치고 부산에서 상경하는 기차에서


통과협 워크숍 마치고 부산에서 상경하는 기차에서


통일 과학기술 연구 모임을 위해 오래간만에 부산을 찾았다. 7시간 남짓한 짧은 체류 일정이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 남을 시간이 될 것이다. (이틀간 일정이지만 사정상 먼저 귀경함.)


부산은 나에게 특별한 도시다. 세상 모르던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냈기에 부산에 갈 때면 남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부산역에서 범내골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오래전 기억 속 동네 풍경들을 스치듯 바라보았다. 차량조차 들어갈 수 없던 그 좁은 골목의 셋집은 이제 흔적조차 없겠지만.


범내골 근처를 흐르는 동천은 여전히 탁한 물빛으로 햇살을 반사하며 조용히 흘러간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감조하천이라 수질 개선이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여야 하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조금은 낯선 이름의 아바니호텔 세미나 공간에 서울, 일산, 대전 그리고 제주에서 연구자들이 모였다. 그간의 남북 과학기술 연구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차분히 점검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쉽지 않은 시간을 버텨왔다. 통일 과학기술 연구는 미래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일이지만, 주목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부로부터 폄훼 당하기까지 했다. 화려한 성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서사로 포장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길을 멈출 수 없다. 우리의 미래 세대가 살아갈 이 땅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달동네 같은 곳에서 살던 시절처럼 힘든 날은 계속 된다. 아직도 정화되지 못한 동천처럼 지금 세상도 여전히 혼탁하고 흐리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가고 그려가는 통일의 미래는 이대로 머물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연구하며 준비한 만큼의 새로운 세상은 반드시 열릴 것이다. 그래서 당장의 가시적 성과가 없더라도, 같은 마음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선후배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우리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다시 걸어나갈 용기를 나누기 위해서.


기차는 서울을 향해 달려간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야간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오늘 함께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마음에 새겨진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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