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지붕 없는 집에 사는 사람들
우리는 종종 문제의 근본 원인을 바라보지 못한 채 눈 앞에 드러난 결과만 붙들고 씨름한다. 마음이 불편해지면 새 취미를 찾고, 관계가 흔들리면 말투를 조금 부드럽게 바꾸고, 일이 꼬이면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마치 값비싼 가구로 집 안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처럼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지붕에 구멍이 나 있다면 이 모든 노력은 결국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지붕 없는 집을 한번 상상해 보자. 폭우가 쏟아지고 홍수가 나면 집 안의 모든 것들이 물에 젖어 못 쓰게 된다. 사람들은 젖은 가구와 옷을 치우고, 축축해진 마룻바닥을 뜯어내며, 다시 새것으로 교체한다. 하지만 복구 작업이 끝나갈 즈음 또다시 폭우가 내린다면, 그동안 공들여 새로 들여놓았던 것들이 모두 다시 비에 젖어 버릴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은 중얼거린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러나 답은 언제나 단순하다. 문제는 가구가 아니라 지붕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지붕이 없는 채로 살아간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고치는 데는 익숙하지만 그 현상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구조적 원인에는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다. 감정이 반복해서 상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새는 지점을 돌아봐야 하고, 관계가 늘 같은 패턴으로 갈등을 낳는 사람은 상대의 말투가 아니라 자기 안의 오래된 상처를 살펴야 한다. 일과 삶에서 비슷한 어려움이 계속된다면, 새로운 스케줄러나 도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애초의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지붕을 고치기 전까지는 비는 언제나 같은 자리로 스며든다. 홍수는 개인의 형편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새 가구를 얼마나 많이 들여놓았는지와 상관없이, 결국 늘 같은 난감함 앞에 서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멈추어 서서 자문할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젖은 가구를 치우고 있는가, 아니면 지붕을 고치고 있는가?”
삶의 문제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스스로도 보지 못했던 ‘지붕 없는 집’을 마주하도록 이끄는, 조용하지만 친절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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