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인생이 되지 말라"
하갈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여주인 사래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광야로 도망쳤던 그녀의 모습은, 고통 앞에서 쉽게 회피를 선택하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도망침은 해결이 아니라 방황의 시작이다
광야는 길이 없는 곳이며, 방향을 잃기 쉬운 공간이다.
하갈은 당장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도망쳤지만, 그 선택은 더 큰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갈은 당장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도망쳤지만, 그 선택은 더 큰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우리도 그렇다. 부부 갈등, 자녀 문제, 직장에서의 압박, 관계의 상처…
이 모든 것 앞에서 우리는 도망치고 싶어 하기도 한다.
배우자에게서, 부모나 자녀에게서, 심지어 하나님에게서조차 멀어지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 모든 것 앞에서 우리는 도망치고 싶어 하기도 한다.
배우자에게서, 부모나 자녀에게서, 심지어 하나님에게서조차 멀어지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도망친 자리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해결이 아니라 깊이 다가온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도망은 자유가 아니라 정체성 상실로 이어진다.
도망쳐 간 광야는 숨는 곳이 아니라 방황이 시작되는 곳이다.
도망쳐 간 광야는 숨는 곳이 아니라 방황이 시작되는 곳이다.
하나님은 내게 물으신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광야에서 방황하던 하갈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 묻는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이 질문은 단순한 정보 확인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일깨우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이 말은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 고통스러운 자리로 돌아가라는 가혹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고통을 참으라는 명령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로 돌아가서 내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와 사명으로의 부르심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로 돌아가서 내가 본래 있어야 할 자리와 사명으로의 부르심이다.
삶에는 고통스럽지만 머물러야 할 자리가 있고, 편안하지만 떠나야 할 자리가 있다.
도망은 이 진리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야 비로소 내가 있어야 할 자리와 감당해야 할 부르심이 분명해진다.
도망은 이 진리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야 비로소 내가 있어야 할 자리와 감당해야 할 부르심이 분명해진다.
돌아갈 때 비로소 복 주심과 자유가 열린다
하갈이 돌아가야 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도망을 계속했다면 어떠했을까?
하갈은 영원한 방랑자가 되고, 이스마엘은 사생아로 역사 속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갈은 순종했다. 힘들지만 다시 돌아갔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하나님이 "엘로이(나를 보시는 하나님)"이심을 체험했다.
또한 자손에 대한 약속을 받았고, 그 약속은 실제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복과 자유는 내 마음대로 도망칠 때 오지 않는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를 지킬 때, 말씀 앞에 순종할 때, 비로소 열리는 선물이다.
광야로 도망치지 말라
현실이 힘들다고 도망치지 말라.
회피는 해결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하나님 앞에 서서 내 정체성을 다시 찾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라.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다시 만나 주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복과 자유의 문을 열어주실 것이다. ***
- 이 내용은 동안교회 김형준 목사님의 주일설교(2025.11.23)인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창16:1-16)"를 듣고, 이를 토대로 그 중 일부 내용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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