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신 예수 안에 푹 잠기라"

 

"빛이신 예수 안에 푹 잠기라"라는 표현은, 예수를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이나 따르는 스승으로 두는 차원이 아니다. 우리 존재 전체를 그분의 빛 안에 맡기라는 요청이다. ‘잠기라’는 말은 부분적 수용이나 선택적 순종을 뜻하지 않는다. 의지와 사고, 감정과 삶의 방향까지 전부를 포괄하는 전면적 몰입을 요구한다.

빛이신 예수

성경에서 빛은 진리이며 생명이고, 분별과 드러남의 상징이다. 예수는 어둠을 설명하는 분이 아니라 어둠을 밀어내는 실재이시기에 “나는 세상의 빛”(요 8:12)이라 선포하신 것이다.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물러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분 안에 있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차원,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존재의 상태가 바뀌는 본질의 변화이다. 빛 안에 들어간 사람은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않는다. 길을 보게 되고, 진리를 분별하게 되며, 생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푹 잠기라

잠긴다는 것은 경계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물에 푹 잠긴 사람은 물과 자신을 분리해 인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빛 안에 푹 잠긴다는 것은 내 생각과 그분의 말씀이 갈라지지 않도록, 내 판단과 그분의 빛이 충돌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내려놓는 행위다.

이는 통제 상실이 아니라 참된 질서로의 편입이다. 세상은 이를 자아의 포기로 보지만, 신앙은 참된 자아의 발견으로 이해한다. 내가 나를 주장할수록 나는 왜곡되고, 내가 나를 내려놓고 그분 안에 잠길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해진다.

푹, 완전히 잠긴다는 것은 조건부 헌신이 아니라 무조건적 신뢰다. “이 부분은 내가, 저 부분은 주님이”라는 협상이 아니라 “전부를 주님께”라는 항복이다. 그러나 이 항복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의 시작이다.

신앙적 함의

이 표현이 요구하는 것은 신앙의 양적 확장이 아니라 질적 전환이다.

부분적 신앙에서 전인적 신뢰로의 전환이다. 일요일에만 머무는 신앙, 교회 안에서만 작동하는 경건함이 아니라 삶 전체가 그분의 빛 아래 놓인다. 직장에서의 결정, 관계에서의 반응, 홀로 있을 때의 생각까지 모두 그 빛에 비추어진다.

행위 중심에서 존재 중심으로의 이동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 안에 있느냐가 핵심이 된다. 선한 행위는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빛 안에 잠긴 존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결과다.

불안 속 결단에서 빛 안에서의 평안으로 나아간다. 세상은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결단하라고 압박한다. 그러나 빛 안에 잠긴 사람은 어둠 속에서 더듬지 않는다. 길이 보이고 방향이 분명해지며, 발걸음에 확신이 깃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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