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삶] 바쁘다고 핑계한 나를 향한 질문들

나는 종종 “바쁘다”는 말 뒤에 숨었다.
그 말은 너무 편리해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누군가의 질문을 자연스럽게 멈추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정말로 바빴던 걸까,
아니면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바쁨이라는 말로 덮어둔 걸까.

‘바쁘다’는 말에는 묘한 뉘앙스가 있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동시에 감당하지 못하고 쫓기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손에 쥔 것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흩어져 있다는 신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질문이 생겼다.
나는 지금 일이 많은 사람인가,
아니면 질서 없이 움직이는 사람인가.

곰곰이 돌아보니,
정말 일이 많았던 시기들은 오히려 차분했다.
해야 할 일은 분명했고,
우선순위가 있었으며,
하루는 짧아도 마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때는 ‘바쁘다’는 말을 할 틈조차 없었다.
질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바쁘다는 말을 자주 꺼냈던 시간들은
설명을 피하고 싶었던 순간들이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아직 결과가 없는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그 질문들 앞에서 한 발 물러서기 위해
나는 바쁨을 내세웠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해 보려 한다.

“바쁘진 않습니다. 할 일이 조금 많을 뿐입니다.”

이 말은 가볍지 않다.
무엇을 내려놓을지,
무엇을 미룰지,
무엇을 반드시 끝낼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바쁨보다 훨씬 어렵지만, 그만큼 정직한 상태다.

“바쁘게 보여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은
어쩌면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질서 없이 흘려보낸 나 자신의 시간에 대한 사과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분주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정돈된 사람으로 남고 싶다.
할 일은 많아도
삶만큼은 흐트러지지 않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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