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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자세 -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내려놓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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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이 물을 얻으려면 주전자보다도 더 낮아져야 한다.” 연구는 본질적으로 얻는 일 입니다. 데이터를 얻고, 의미를 얻고, 통찰을 얻고, 결국에는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얻음’은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이미 가득 찬 잔에는 더 이상 물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이론, 경험, 직관이 이미 완결된 것처럼 굳어 있을 때, 새로운 자료는 흘러넘치고 맙니다. 연구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더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는 일 입니다. ✔ 내가 옳다는 확신보다,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 을 먼저 열어두는 것 ✔ 익숙한 해석보다, 낯선 데이터의 말 을 먼저 듣는 것 ✔ 결론을 앞세우기보다, 질문을 낮추는 것 주전자보다 낮아질 때 비로소 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데이터보다 낮아지고, 대상보다 낮아지고, 현실보다 낮아질 때 그때 비로소 연구는 ‘증명’이 아니라 ' 이해' 가 됩니다. 연구자의 자세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내려놓는 용기 입니다.

[말씀] 하나님 알아가기 - 말씀이 현실이 되는 순간 (창세기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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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후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마침내 이삭이 태어난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아이의 탄생을 넘어 아브라함 부부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깊이 체험하고 알아가는 과정이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살펴본다.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본문 1절과 2절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허언하시는 분이 아니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약속을 어기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내뱉은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다. 사라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은 것은 우연이나 자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된 결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첫 번째 단계는 그분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이나 경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과정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정하신 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었을 때의 나이는 백 세였다. 생물학적으로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 시기가 되었을 때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인간이 정해놓은 한계에 갇히지 않는 분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상황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거나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자이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정확한 때에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응답하신다. 고통의 탄식을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사라는 이삭을 낳고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신다고 고백한다. 이전까지 사라의 삶은 불임으로 인한 고통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의 삶에 진정한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다. 이삭이라는 이름의 뜻이 웃음인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삶...

머물게 하는 것과 떠나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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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꿀이 없다면 벌은 머물지 않고, 사람에게 온정이 없다면 누구도 곁에 남지 않습니다. 꽃에 향기가 없다면 나비는 날아들지 않고, 사람에게 사랑이 없다면 아무도 다가오지 않습니다. 꽃이 시들면 벌과 나비가 떠나가듯, 마음이 메마르면 사람도 하나둘 멀어져 갑니다. ***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의 계략 -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5가지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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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 Doubt  :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선하심에 의문을 갖게 한다. 실망 Discouragement  : 하나님보다는 당신의 문제를 보게 한다. 혼돈 Diversion  : 잘못된 일에 매력을 느끼게 하여 올바른 일보다는 잘못된 일을 원하게 한다. 패배감 Defeat  : 당신을 실패자처럼 느껴 시도조차 못하게 한다. 연기 Delay  : 어떤 일을 미루어 절대 성취하지 못하게 한다.

[묵상 시] 결핍의 시선에서 감사의 하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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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덴의 속삭임 풍요로운 동산에 안식의 노래가 흐르고 가지마다 주신 복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으나 교묘한 속삭임은 단 하나, 가지지 못한 것에 시선을 묶었네. '정말 그러하냐'며 던져진 의심의 씨앗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리는 안개가 되고 풍성한 은혜를 보던 하와의 눈은 금지된 하나의 열매에 사로잡혔네. 침묵의 대가 묻지 않았던 침묵은 작은 틈이 되어 사탄의 프레임이 진실인 듯 뿌리내리고 확인하지 않은 수용의 끝에서 낙원의 평화는 파국의 그림자로 바뀌었네. 하나님께 여쭙지 않은 한순간의 선택이 역사를 돌리고 운명을 흔들었으니 진리를 향한 질문 하나가 얼마나 귀한 방패인지를 드러내네. 현대의 하와들 세월을 건너온 하와의 자손들은 오늘도 소셜 미디어의 조명 아래서 자신의 일상을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견주며 없는 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믿고 있네. 조작된 욕망은 광고와 문화의 옷을 입고 갈망의 감옥을 정교하게 쌓아 올리지만 이제 우리는 하와가 멈췄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다시 초대하는 기도를 시작하네. 분별의 길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마음의 조급함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욕망이 아닌 필요를 묻기 시작할 때 에덴에서 잃어버린 평안의 길이 우리 발 아래 다시 열리고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얻는 지혜가 어둠의 계략을 밝히는 등불이 되리. 감사의 검 자유는 소유를 늘리는 데 있지 않고 이미 주어진 은혜의 깊이를 아는 데 있으니 감사의 시선으로 오늘을 바라보는 지혜가 사탄의 계략을 꿰뚫는 가장 날카로운 검이 되리. 결핍이 아니라 충만함을 헤아리는 하루하루가 에덴의 안식을 회복하는 걸음이 되고 하나님과 함께 걷는 매 순간이 잃어버린 낙원을 다시 여는 열쇠가 되리. ***

[오늘의 삶] 바쁘다고 핑계한 나를 향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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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바쁘다”는 말 뒤에 숨었다. 그 말은 너무 편리해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누군가의 질문을 자연스럽게 멈추게 만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정말로 바빴던 걸까, 아니면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바쁨이라는 말로 덮어둔 걸까. ‘바쁘다’는 말에는 묘한 뉘앙스가 있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동시에 감당하지 못하고 쫓기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손에 쥔 것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흩어져 있다는 신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질문이 생겼다. 나는 지금 일이 많은 사람인가, 아니면 질서 없이 움직이는 사람인가. 곰곰이 돌아보니, 정말 일이 많았던 시기들은 오히려 차분했다. 해야 할 일은 분명했고, 우선순위가 있었으며, 하루는 짧아도 마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때는 ‘바쁘다’는 말을 할 틈조차 없었다. 질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바쁘다는 말을 자주 꺼냈던 시간들은 설명을 피하고 싶었던 순간들이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아직 결과가 없는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그 질문들 앞에서 한 발 물러서기 위해 나는 바쁨을 내세웠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해 보려 한다. “바쁘진 않습니다. 할 일이 조금 많을 뿐입니다.” 이 말은 가볍지 않다. 무엇을 내려놓을지, 무엇을 미룰지, 무엇을 반드시 끝낼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바쁨보다 훨씬 어렵지만, 그만큼 정직한 상태다. “바쁘게 보여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은 어쩌면 누군가에게가 아니라 질서 없이 흘려보낸 나 자신의 시간에 대한 사과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분주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정돈된 사람으로 남고 싶다. 할 일은 많아도 삶만큼은 흐트러지지 않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