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들 때, 다산 선생에게서 배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은 단지 교과서 속 위인이 아니다. 그는 극한의 역경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잃지 않았고, 그 시간 속에서 오히려 사유와 성취를 완성해 낸 인물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다산 선생은 여전히 유효한 멘토이다. "인생이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 정약용은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무려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언제 사약이 내려올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절망 대신 성찰을 택했고, 고난을 학문과 사상의 토양으로 삼았다. 고난은 삶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삶을 단련할 수도 있다. "공부가 어렵다고 말하지 말라" 평생 500권의 책을 읽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정약용은 500여 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겼다. 유배지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는 경학, 정치, 법률, 농학, 의학, 건축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 체계를 구축했다. 학문의 깊이는 환경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사귈 때 나이를 묻지 말라" 신분과 연령의 위계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정약용은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혜장선사와 초의선사를 학문의 벗으로 삼았다. 배움과 우정 앞에서 나이와 신분은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며 배우려는 자세다. "성공에 집착하지 말라" 정약용의 사상과 학문은 벼슬길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권력에서 멀어진 유배 시절에 완성되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같은 그의 대표작들은 모두 그 시기에 집필되었다. 인생의 가장 깊은 성찰과 성숙은 종종 실패와 좌절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을 무작정 의심하지도, 맹목적으로 믿지도 말라" 그는 함께 국정을 논하던 동료들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인간관계의 냉혹함을 체험했지만, 사람 자체를 혐오하지는 않았다. 대신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 통찰은 그의 저술 전반에 녹아 있다. 삶에는 의심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