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삶이 힘들 때, 다산 선생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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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은 단지 교과서 속 위인이 아니다. 그는 극한의 역경 속에서도 삶의 방향을 잃지 않았고, 그 시간 속에서 오히려 사유와 성취를 완성해 낸 인물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다산 선생은 여전히 유효한 멘토이다. "인생이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 정약용은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무려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언제 사약이 내려올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절망 대신 성찰을 택했고, 고난을 학문과 사상의 토양으로 삼았다. 고난은 삶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삶을 단련할 수도 있다. "공부가 어렵다고 말하지 말라" 평생 500권의 책을 읽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정약용은 500여 권에 달하는 저술을 남겼다. 유배지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는 경학, 정치, 법률, 농학, 의학, 건축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 체계를 구축했다. 학문의 깊이는 환경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사귈 때 나이를 묻지 말라" 신분과 연령의 위계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정약용은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혜장선사와 초의선사를 학문의 벗으로 삼았다. 배움과 우정 앞에서 나이와 신분은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며 배우려는 자세다. "성공에 집착하지 말라" 정약용의 사상과 학문은 벼슬길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권력에서 멀어진 유배 시절에 완성되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같은 그의 대표작들은 모두 그 시기에 집필되었다. 인생의 가장 깊은 성찰과 성숙은 종종 실패와 좌절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을 무작정 의심하지도, 맹목적으로 믿지도 말라" 그는 함께 국정을 논하던 동료들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인간관계의 냉혹함을 체험했지만, 사람 자체를 혐오하지는 않았다. 대신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 통찰은 그의 저술 전반에 녹아 있다. 삶에는 의심과...

[신앙칼럼] 신앙의 결단은 의지보다 기억의 정직함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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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신앙을 "마음을 더 굳게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도할 때도 "이번에는 꼭 지키겠습니다", "더 열심히 믿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신앙의 결단 은 사실 의지를 얼마나 강하게 쓰느냐의 문제라기보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 의 문제에 더 가깝다. 신앙의 결단은 "더 세게 결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하나님이 실제로 어떤 분이셨는지를 얼마나 정직하게 기억하고 있는가에서 나온다. 성경은 왜 계속 "기억하라"고 말할까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결단하라" 보다 "기억하라"는 말씀을 훨씬 더 많이 하신다. 출애굽의 하나님을 기억하라 광야에서 너희를 인도한 일을 기억하라 십자가와 부활을 기억하라 이 말씀들은 단순히 옛날 일을 떠올리라는 뜻이 아니다. 기억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신명기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가 애굽에서 종이었고, 하나님이 너희를 구해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신 15:15). 이 말씀의 뜻은 이렇다. "너희도 힘들었던 때가 있었으니, 지금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 즉, 기억이 우리의 태도와 선택을 바꾼다는 것이다. 성찬식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 눅 22:19) 고 하셨다. 이는 단순한 추모 행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지금 나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기억은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간다. 의지는 왜 자주 흔들릴까 의지는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기분이 좋을 때는 잘 지킬 것 같다가도, 힘들거나 두려워지면 금방 무너진다. 아침에 세운 결심이 점심도 되기 전에 깨진다. 작심삼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나약해서라기보다는 의지가 원래 그렇...

허준의 동의보감이 말하는 양생 원칙 - "과하지 말고, 흐름을 거스르지 말며, 일상을 바로 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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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보감 』(1613)은 특정 건강법을 나열한 책이 아니고,  생활 전반의 균형을 통해 병을 예방하는 체계 를 제시한다. 허준은 병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과욕·과로·과식·과노가 누적되어 발생한다고 보았으며, 치료보다 미병(未病) 예방 을 상위 개념으로 두었다. 이는 현대 의학의 만성질환 예방 원칙과 정확히 일치한다. 1. 음식 양생(食養生) : 절제와 규칙성 "배부르게 먹지 말고, 허기지게도 말라. 철마다 나는 음식을 먹고, 지나치게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것을 피하라." 허준은 음식 섭취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절제를 꼽았다. 과식·야식·폭식은 만성 염증과 대사질환 위험을 높인다. 제철 식품 위주의 단순하고 규칙적인 식사가 건강의 기본이며, '보약'을 찾기보다 평소 식사의 절제가 더 중요하다. 2. 수면 양생(睡眠) : 생체 리듬의 존중 밤은 음(陰)이 자라는 시간이므로 반드시 쉬어야 하며, 밤샘은 기혈을 크게 손상시킨다고 보았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생명력 회복의 핵심 과정이다. 수면 부족은 면역 저하, 호르몬 교란, 인지기능 저하로 직결된다. 자정 전후 취침과 일정한 수면 리듬 유지는 과학적으로도 검증된 건강 관리의 기본이다. 3. 노동과 운동(勞動) : 적절한 활동량 "가만히 있으면 기가 막히고, 지나치면 기가 상한다." 가벼운 활동은 필수이나, 땀이 과도하면 해롭다는 것이 동의보감의 입장이다. 좌식 생활은 해로우며, 중강도 일상 운동이 최선이다. 과도한 고강도 운동이나 번아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매일 꾸준히, 숨이 약간 찰 정도'가 이상적인 운동 강도다. 4. 정서 양생(情志) : 감정 관리의 의학적 가치 분노·근심·슬픔·두려움은 각각 장부를 손상시키며, 감정의 과도한 분출이나 억압 모두 병의 원인이라고 허준은 강조했다. 감정은 단순한 심리 상태가 아니라 신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만성 스트레스는 심혈관계, 면역계, 소화계에 실질적...

"빛이신 예수 안에 푹 잠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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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신 예수 안에 푹 잠기라"라는 표현은, 예수를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이나 따르는 스승으로 두는 차원이 아니다. 우리 존재 전체를 그분의 빛 안에 맡기라는 요청이다. ‘잠기라’는 말은 부분적 수용이나 선택적 순종을 뜻하지 않는다. 의지와 사고, 감정과 삶의 방향까지 전부를 포괄하는 전면적 몰입을 요구한다. 빛이신 예수 성경에서 빛은 진리이며 생명이고, 분별과 드러남의 상징이다. 예수는 어둠을 설명하는 분이 아니라 어둠을 밀어내는 실재이시기에 “나는 세상의 빛”(요 8:12)이라 선포하신 것이다.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다. 빛이 임하면 어둠은 물러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분 안에 있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차원,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존재의 상태가 바뀌는 본질의 변화이다. 빛 안에 들어간 사람은 더 이상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않는다. 길을 보게 되고, 진리를 분별하게 되며, 생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푹 잠기라 잠긴다는 것은 경계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물에 푹 잠긴 사람은 물과 자신을 분리해 인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빛 안에 푹 잠긴다는 것은 내 생각과 그분의 말씀이 갈라지지 않도록, 내 판단과 그분의 빛이 충돌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내려놓는 행위다. 이는 통제 상실이 아니라 참된 질서로의 편입이다. 세상은 이를 자아의 포기로 보지만, 신앙은 참된 자아의 발견으로 이해한다. 내가 나를 주장할수록 나는 왜곡되고, 내가 나를 내려놓고 그분 안에 잠길 때 비로소 나는 온전해진다. 푹, 완전히 잠긴다는 것은 조건부 헌신이 아니라 무조건적 신뢰다. “이 부분은 내가, 저 부분은 주님이”라는 협상이 아니라 “전부를 주님께”라는 항복이다. 그러나 이 항복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의 시작이다. 신앙적 함의 이 표현이 요구하는 것은 신앙의 양적 확장이 아니라 질적 전환이다. 부분적 신앙에서 전인적 신뢰로의 전환이다. 일요일에만 머무는 신앙, 교회 안에서만 작동하는 경건함이 아니라 삶 전체가 그분의 빛 아래 놓인다....

‘감당할 수 있음’(affordability) - 그저 평범하게,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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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fordability: 야망 이전의 존엄 요즘 정치와 경제 담론에서 자주 들리는 단어가 하나 있다. Affordability , 우리말로 옮기면 ‘감당할 수 있음’ 정도가 된다. 얼핏 들으면 정책 보고서에나 나올 법한 기술적 용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단어에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솔직하고 절박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개념을 가장 선명하게 언어화한 인물로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 미국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 다. 그의 메시지는 우리가 오랫동안 들어온 이야기와 결이 다르다. “더 열심히 일하면 잘살 수 있다”, “노력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서사와는 다른 방향을 향한다. 그가 던진 말은 훨씬 낮고, 훨씬 현실적이다. “부자가 되지 않아도 좋다. 지금의 삶을 버틸 수 있게 해달라.” 이 문장은 요구라기보다 고백에 가깝다. 왜 지금, Affordability인가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면 이유는 분명하다. 물가 오르는 게 참 만만치 않다. 교통비는 일상적인 부담이 되었으며, 병원비는 언제나 불안 요소다. 아이를 키운다면 교육비는 아예 계산이 어려운 항목이 된다. 문제는 이 모든 필수 비용이 우리의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성공’을 꿈꾸기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성공 이전에 실패하지 않는 것이 목표가 된다. 더 높이 올라갈 사다리가 아니라  추락하지 않게 해주는 바닥 이 필요해진다. 세 가지 변화 Affordability라는 단어가 힘을 갖게 된 배경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다. 첫째, 성공의 의미 가 달라졌다. 과거의 성공은 상승 이동을 의미했다. 더 많은 소득, 더 넓은 집, 더 높은 지위가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의 성공은 다르다. 지금 가진 것을 유지할 수 있는가, 삶이 지속 가능한가가 핵심 기준이 된다. 더 잘 사는 삶보다, 계속 살아낼 수 있는 삶 이 중요해졌다. 둘째, 정책의 시선 이 바뀌고 있다. GDP 성장률이나...

「존엄한 노년을 위한 삶의 태도 12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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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 쇠퇴와 사회적 고립이라는 현실 속에서 노인이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그리고 삶의 마무리를 하면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정리한 생활 윤리의 기준이다. 1. 노년에는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건강 유지를 위해 게으름을 경계하고, 걷기와 같은 기본적인 신체 활동을 생활화해야 한다.      노년의 자기관리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2.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외로움은 노년의 공통된 운명이다.      타인이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목표와 즐거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3.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삶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친구는 점차 줄어든다.      혼자 산책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며, 고독을 견딜 수 있는 내적 근력을 길러야 한다. 4. 진심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형식적인 사양이나 거짓된 겸손은 관계를 단절시킨다.      필요와 욕구는 분명히 말할 줄 알아야 한다. 5. 같은 세대와의 관계를 소중히 해야 한다.      노년의 현실을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는 동년배이다.      같은 연배와의 교류는 노후를 지탱하는 중요한 자산이다. 6. 즐거움을 위해서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노후의 삶의 질은 인색함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의미 있는 경험과 기쁨에는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7. 돈이 전부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돈은 중요하지만 삶의 전부는 아니다.      모든 것을 금전으로 환산하는 태도는 노후를 황량하게 만...

[묵상] 광야와 가나안, 그리고 진정한 형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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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인간의 힘과 능력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절감하는 공간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광야에서 우리는 연약하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며, 하나님이 신실하심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옥한 땅과 풍성한 수확, 안정된 삶의 기반이 주어진 탓에 그것이 내 선택과 노력의 열매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가 계획하고 일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하나님께 대한 의존은 희미해지고, 자기 확신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러나 성경은 반복해서 말한다, 참된 형통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에 있다 고. 가나안의 풍요도, 광야의 훈련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다.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신 분이 가나안에서 곡식을 주시는 분이다. 보이는 환경이 달라졌을 뿐 공급자는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이 진리를 얼마나 기억하느냐이다. 풍요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성공 속에서도 그분의 은혜를 고백할 때 비로소 삶은 복된 길을 걸어간다. 내가 있는 곳이 광야든 가나안이든, 모든 여정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르는 것,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형통의 비밀이다. ***

Know-what의 시대 - AI가 도래하며 인간에게 남은 가장 차별화된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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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now-how의 시대 - ‘어떻게 할 것인가’가 경쟁력이던 시기 산업화와 기술화가 진행되던 시기에는 ‘어떻게(How)’ 하는가 가 개인 능력의 핵심이었다. 기술을 손으로 익히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했고, 제작, 개발 등에서의 숙련이 곧 경쟁력을 결정했다. 매뉴얼과 절차 중심의 지식 구조가 사회를 움직였다. Know-where의 시대 - 정보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 앞서가던 시기 인터넷 혁명이 시작되면서 중요한 능력은 ‘어디서(Where)’ 정보를 찾는가 로 이동하였다. 구글링 능력, 데이터베이스 구조 이해, 정보 접근성이 생산성의 핵심이 되었다. 방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우위를 점하였다. Know-who의 시대 - 네트워크가 곧 자산이던 시기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누구를 아는가(Who)’가 경쟁력 그 자체가 되었다. 전문가 네트워크, 관계 자본, 협업 파트너십이 지식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었다. 사회연결망(Network)을 얼마나 촘촘히 구축하고 활용하느냐가 성과를 좌우했다. Know-what의 시대 - AI가 도래하며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능력 AI 시대가 시작되면서 중심 질문은 ‘무엇을 묻는가(What)’로 이동하고 있다. 이전 시대에는 How, Where, Who가  인간의 핵심 역량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기 때문이다. AI는 절차와 방식, 코딩 등 How 를 대신 수행한다. AI는 정보 탐색, 요약, 분류 등 Where 를 자동화한다. AI는 전문 지식의 연결과 통합, 추천까지 수행하며 Who 의 기능을 대체한다. 이제 인간에게 남은 가장 차별화된 경쟁력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있다. 여기서 Know-what이란 단순한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지적 설계 능력을 말한다. 어떤 문제를 정의할 것인가 무엇을 규명하려 하는가 어떤 질문이 의미 있고 영향력이 있는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무엇이 본질인가 등...

사람들이 AI 창작물에 ‘어딘가 모르게 신뢰가 안 간다’고 느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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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는 이런 것이 없기 때문 책임이 없다. 어떤 말도, 어떤 창작물도 AI 스스로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의 주체가 비어 있으니 신뢰도 쌓일 수 없다.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 정보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투명하게 추적할 수 없다. 출처가 보이지 않으면 신뢰는 흔들린다. 서사가 없다. 창작자 자신의 삶, 경험, 선택의 흔적이 없다. 사람들은 작품 뒤의 이야기에서 신뢰와 감동을 느끼는데 AI에게는 그 배경이 없다. 자연스러움이 없다. 인간만이 만들어내는 우발성, 결함, 흔들림, 미세한 변주가 부족하다. 너무 매끄러워서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경험의 감정이 없다. 표현은 가능해도 실제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경험된 감정’에서 진정성을 느끼는데 AI는 그 근원이 없다. 수고가 없다. 창작의 고통, 반복, 시행착오라는 “노력의 흔적”이 없다. 쉽게 만들어진 결과물에는 자연스럽게 가치가 낮게 부여된다. 독창성이 없다. 기존 데이터의 재구성이아서 익숙함은 제공할지라도 새로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100명 중 97명은 AI 음악과 인간 음악을 구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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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음원 스트리밍 업체 디저(Deezer)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AI가 만든 음악과 인간이 만든 음악을 청각적으로 구별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미국, 일본 등 8개국 9,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참가자의 약 97%가 AI 생성 음악을 정확히 식별해내지 못했다. 이 결과에 대해 응답자의 71%는 자신이 구별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고, 52%는 차이를 알 수 없다는 점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또한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의 연구에서는 오히려 AI 음악이 인간의 곡보다 청취자의 동공을 더 크게 확장시키는 등 강한 생체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AI 음악이 기술적 완성도를 넘어 감정적 자극의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했음을 시사한다. 이번 조사 결과는 생성형 AI 기술이 음악 창작 영역에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완전히 건너뛰었음을 증명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계적인 소음이나 어색한 구성으로 쉽게 구분되던 AI 음악이 이제는 전문가조차 속일 수 있는 수준(Suno, Udio 등)에 도달했다. 그러나 기술적 완성도와 대중의 수용성 사이에는 여전히 큰 괴리가 존재한다. 청취자들은 귀로는 차이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심리적으로는 저항감을 보이고 있다. 응답자의 80%가 'AI 음악임을 명확히 표시(라벨링)해달라'고 요구했고, 65% 이상이 AI의 저작권 학습과 아티스트 생계 위협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 이를 방증한다. 결국 향후 음악 시장의 쟁점은 '퀄리티'가 아닌 '투명성'과 '권리 보장'으로 이동할 것이다. 음원 플랫폼들은 AI 창작물에 대한 태그 의무화를 가속할 것이며, 인간 창작자는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고유의 스토리텔링이나 팬덤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기도문] 제 삶에도 아직 남은 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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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인생에도 이미 많은 승리를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지나온 시간 속에 베풀어주신 은혜와 보호하심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주님, 그 은혜의 자리만 바라보며 제가 아직 점령하지 못한 땅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제 삶에도 아직 남은 땅이 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멈춘 자리, 편안함 때문에 돌아보지 않은 자리, '나중에'라고 미루어둔 자리, 하나님이 계속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그 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제가 그 땅을 두려워하거나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었다면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 땅을 점령하는 일은 제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과 주님의 임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 제가 피하고 싶었던 영역을 향해 다시 한 걸음을 내딛을 용기를 주옵소서. 주님이 먼저 가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이 싸우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저의 "남은 땅"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믿음의 성장의 땅을 새롭게 하시고, 관계에서 마음을 잇고 회복하게 하시며, 영적 습관을 다시 세우게 하시고, 사명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하시고, 성품과 인격이 주님 닮은 모습으로 빚어지게 하시고, 용서와 화해의 문을 열게 하시고, 헌신의 자리를 기쁨으로 걸어가게 하옵소서. 주님, 저의 남은 땅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이미 약속하신 땅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요단 강 동쪽에 머문 사람들의 눈에 좋아 보이는 선택 : 풍요로워 보이나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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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은 요단 강 동쪽을 기업으로 선택하였다. 눈 앞에 펼쳐진 그 땅은 비옥하고 넉넉한 초지였으며, 가축을 키우기에 더없이 좋은 현실적 선택처럼 보였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판단이었고, 당장은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자리였다. 그러나 그 선택에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 숨어 있었다. 약속의 땅 경계 밖, 예배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진 위치, 요단강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언제든 신앙의 거리로 변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들을 떠나보내며 간절히 경고하였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에게 붙어 있으라”(수 22:5) 이 말은 축복이자 동시에 그들의 선택 속에 잠재된 위험을 꿰뚫어 본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역사는 결국 그 경고를 그대로 드러냈다. 요단강 근처에 쌓은 제단 하나가 오해의 불씨가 되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긴장과 갈등을 만들었다. 세월이 흐르자 주변 민족의 문화가 스며들었고, 요단 동쪽이라는 경계는 점점 그들의 마음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외세가 침공했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진 지파가 바로 그들이었다. 눈에 좋아 보이는 선택이 시간 속에서 믿음의 뿌리를 조금씩 말려 버렸다. 풍요는 있었으나, 보호는 없었다. 안정은 있었으나, 영적 중심은 희미해졌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자리를 잡고 있는가. 내가 편하다고 여긴 자리, 내 계산과 필요를 따라 결정한 그 자리의 영적 거리는 과연 어떠한가. 나는 오늘 이 기록을 거울처럼 세워  나의 선택을 비추어 본다. 그 자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워지는 자리인가? 아니면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데 내가 아직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자리인가? 보이지 않는 작은 거리는 세월 속에서 깊은 골짜기가 될 수 있다. 돌아올 수 없는 어둠이 되기 전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좋아 보이는 땅’이 반드시 ‘지켜 주는 땅’은 ...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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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 맡긴다 ”는 것은… 통제를 내려놓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뢰하며 하나님의 시간표를 받아들이고 염려를 하나님께 내려놓고 내 몫과 하나님의 몫을 구별하며 결과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내가 바라는 노년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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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보다 발걸음이 앞서고, 설명보다 존재가 설득력 있고, 연민보다 책임이 빛나고, 주장보다 진리가 불타오르는 사람.

[시] 12월의 기도/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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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합니다 ​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 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 12월에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여 조용히 말하렵니다 ​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