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25의 게시물 표시

[오늘의 기도] 참된 중심을 구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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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중심을 구하는 기도> 주님, 제가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며 마음 깊숙한 죄의 뿌리를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모든 행동 뒤에 숨은 동기까지 아시는 주님의 시선을 항상 의식하게 하소서. 입술로는 찬양하고, 손으로는 봉사하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세상의 가치와 방식을 좇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하소서. 이 땅의 풍조와 문화에 무분별하게 순응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 참된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일상의 모든 순간, 일어날 때부터 잠들 때까지, 홀로 있을 때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주께서 홀로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다”는 고백이 제 삶으로 증거되게 하소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소망의 근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좋은 일 앞에서는 묻지 않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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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일 앞에서는 묻지 않는 질문 언제부터 이런 공식을 만들었을까? 슬픔은 하나님 탓, 기쁨은 내 덕분. 참 이상하고도 익숙한 패턴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금세 스스로 대단해진다. 마치 모든 걸 혼자 해낸 것처럼. 하지만 슬픈 일이 생기면 곧장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만 찾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기쁨 속에서는 자연스레 잊힌다. 오늘 아침의 작은 실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생각해봤다. 하루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귀가하는 것, 편안한 침대에서 잠들 수 있었던 것, 아침에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던 것. 그런 평범하고도 소중한 순간들 앞에서도 한번쯤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왜 나에게 이런 좋은 일이 생긴 걸까?” 그러자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피어오른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것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다음에 슬픈 일이 생긴다면, “ 왜 나에게 ”라는 질문 대신 이렇게 속삭여보려 한다. “ 하나님, 이 슬픔 속에도 당신은 제 곁에 계시지요?” “이 아픔 속에서 저에게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있나요?” 그리고 좋은 일이 생긴다면 이렇게 물어보려 한다. “하나님의 은혜 말고, 무엇으로 이걸 설명할 수 있을까요?”  믿음이라는 것 믿음은 기쁨과 슬픔, 그 모든 순간에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붙드는 마음일 것이다. 좋을 때만 내가 대단해지고, 안 좋을 때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감사는 어쩌면 묻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답. 은혜의 또 다른 이름 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좋은 일이 생기면 한번 물어보자. “ 왜 나에게 이런 좋은 일이? ” 그 작은 질문 하나가 살아가는 일상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게 해줄 것이다. ***

[시] 가장 넓은 길 / 양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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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넓은 길 / 양광모 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원망하지 말고 기다려라. 눈에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니요,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다 보면 새벽과 함께 길이 나타날 것이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주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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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이른 새벽, 목마름에 눈을 뜰 때 아침 이슬처럼 시원히 갈증을 채워주시는 주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머무시며 생각의 한 자락만 올려도 조용히 다가와 품에 안아주시는 주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조심스레 이름을 부를 때면 내 영혼의 귓가에 사랑으로 속삭이시는 주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쓸쓸한 밤길, 갈 바 몰라 혼자 헤맬 때면 한 걸음 먼저 다가와 말없이 동행해주시는 주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고단한 날들이 밀려올 때마다 묵묵히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시며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는 주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주님, 언제라도 부르면 늘 변함없는 사랑으로 응답해 주시는 주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 # 이 글은 작자 미상의 글로 블로그 등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    신앙시 버전으로 재작성한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불로 죄를 태우시고, 순전함으로 회복되길 원합니다. (겔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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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거룩한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본 그 영광스러운 환상처럼, 주님의 보좌는 창공 위에 계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권능의 자리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룹들 사이에서 타는 숯불을 취하여 성 위에 흩으라 명하시는 그 음성 앞에서 저의 마음이 깊이 떨립니다. 죄로 물든 이 땅과 저 자신을 향한 주님의 거룩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압니다. 불로 죄를 태우시고, 순전함으로 회복되길 원합니다. 그 심판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주님의 공의와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저의 삶이 주님의 영광을 온전히 담아내는 성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룹의 날개 소리처럼 위엄찬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두려워 떨며 동시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비록 정결케 하시는 불의 시련이 찾아올지라도, 그것이 저를 더욱 주님의 형상으로 빚으시는 은혜의 도구임을 믿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무엇보다 주님의 영광이 제게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성전에서 영광이 떠나시는 그 애통함을 제가 경험하지 않도록, 날마다 주님 앞에서 성결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저의 마음과 생각, 말과 행동이 모두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산 제사가 되게 하시고, 주님이 기뻐 거하시는 거룩한 성소로 지켜주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 바가지의 마중물, 그 작지만 위대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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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바가지의 마중물, 그 작지만 위대한 시작 한 사람이 있었다. 끝없는 사막을 걷다 지쳐 쓰러질 듯 갈증에 허덕이던 그는 오래된 폐허 속 주유소에서 물 펌프 하나를 발견한다. 그의 눈앞에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한 바가지의 물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엔 이런 팻말이 있었다. "이 물은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이 물은 지하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마중물’입니다. 펌프 안으로 이 물을 붓고, 정성을 다해 펌프질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시원한 물줄기가 당신의 갈증을 풀어줄 것입니다. 단, 당신도 마지막에 다시 ‘한 바가지의 물’을 채워놓고 가십시오. 뒤따라 올 또 다른 나그네를 위해서입니다." 이 작은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커다란 가르침이 담겨 있다. 작은 물 한 바가지의 의미 ‘한 바가지의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다. 그것은 희망의 씨앗 이며, 신뢰의 증거 이다. 지금 당장은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유일한 물이지만, 그것을 참고 견디고 펌프질을 선택할 때,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법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단기적인 이익보다 ‘공동체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지속 가능성은 누군가의 절제와 배려로부터 시작된다 앞선 나그네가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물을 마셔버렸다면, 그 이후로는 누구도 물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삶이, 수많은 선한 선택의 결과라는 점을 시사한다. 누군가 밤을 새워 만든 시스템, 이름 없이 흘린 땀, 그리고 말없이 남긴 배려 들이 오늘의 우리를 살게 했음을 잊지 말자. 나의 행동이 만들어가는 다음 세대의 삶 나 하나쯤은 괜찮다는 생각은 사막의 펌프를 영원히 멈추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나의 배려와 절제가 공동체 전체를 살릴 수도 있다. 그 지친 나그네가 한 바가지의 물을 펌프에 붓고 목을 축인 뒤 또 다시 바가지를 채워 놓고 떠나듯이, 우리 역시 작지만 의미 있는 한 바가지의 물 을 남기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따뜻한 세상...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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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이 시대의 죄악과 불법을 보며 탄식하고 우는 자가 되게 하소서. 내 마음이 주님의 거룩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성령의 경고에 둔감하지 않게 하소서. 형식과 외형이 아닌, 주님의 뜻에 합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나의 이마에 주님의 구별된 표가 새겨지게 하소서. 주님의 심판은 공의롭고 거룩하시며 그 안에서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눈 앞에서 하나님을 분명하게 의식하며, 진실하게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절 묵상] “하나님을 알게 되는 길” (겔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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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겔 6:7) 하나님을 알게 되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아는 것과 징계를 통해 무너진 자리에서 깨닫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 이 가장 복된 길입니다. 말씀을 외면할 때 우리에게 징계가 찾아옵니다 . 물론 그 징계조차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은혜의 손길 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최후의 심판 날 에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회개의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 바로 이 순간 이 하나님을 만날 때요, 구원받을 기회입니다. “ 주님, 징계 중에도 사랑을 거두지 않으시는 은혜에 감사합니다. 지금 이 순간, 주님을 찾고 회개하며 주께 돌아가게 하소서. 주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

"게임이 끝나면, 모두 같은 상자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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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끝나면, 모두 같은 상자에 들어간다 “게임이 끝나면, 왕과 병사는 같은 상자에 들어간다.” 짧지만 깊은 뜻을 담은 이탈리아의 속담은 인생의 본질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비록 체스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우리 전통 장기를 떠올려 보면 이 진리는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어릴 적에 처음으로 장기를 배우던 기억이 납니다. 왕인 한(漢)과 초(楚)는 궁성 안에서만 움직이는 귀한 몸이었고, 차는 판을 가로지르며 기세를 뽐냈습니다. 마는 꺾어 뛰고, 포는 말을 하나 넘어서 상대를 잡을 수 있었죠. 그리고 가장 약한 말인 졸. 오직 앞으로만 나아갈 수 있지만 강을 건너면 좌우로도 움직이며 새로운 쓰임을 얻습니다. 각 말들은 모두 다릅니다. 움직임도, 힘도, 역할도 제각각이지만 그 모든 가치는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게임이 끝나는 순간, 위풍당당했던 차도, 절대적인 왕도, 보잘것없던 졸도 모두 똑같이 장기통 속에 조용히 놓입니다. 인생이라는 장기판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대기업 회장도, 동네 가게 사장도, 의사도, 청소부도 각기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지만 결국 향하는 곳은 같습니다. 장기에서 졸이 강을 건너 '졸장군'이 되듯 평범한 사람도 노력으로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성취가 아무리 커도 게임이 끝나면 결국 같은 곳에 도달합니다. 조선의 왕도, 고구려의 장군도 그리고 이름 없는 농부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시골 동네의 할머니도 마지막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깨달음 이 속담이 주는 첫 번째 메시지는 겸손 입니다. 어떤 지위에 있든, 성공을 이뤘든 그것으로 타인을 판단하거나 거리를 두어선 안 됩니다. 내가  오늘   부장이지만 신입사원 역시 언젠가는 같은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입니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면, 남는 건 우리가 나눈 진심과 따뜻한 흔적일 것입니다. 장기에서도...

솔로몬의 전도서가 전하는 세 가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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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의 전도서가 전하는 세 가지 지혜 1.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모든 사람의 결국은 죽음이라…” (전도서 7:2)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 솔로몬은 인생의 모든 수고와 쾌락, 지혜와 명예가 결국은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부유해도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찾아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삶을 바르게 살라 고 합니다. 죽음을 기억할 때, 더 이상 헛된 것을 붙잡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정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전도서는 메멘토 모리의 지혜를 가장 성경적으로 풀어낸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겸허함을 가지라 “지혜자라 할지라도 때와 기회를 알지 못하느니라.” (전도서 9:11) “사람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이라.” (전도서 9:1) 솔로몬은 인생이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노력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이 아니며, ‘때’와 ‘기회’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 임을 인정하라 권면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살아가는 피조물로서의 겸허함을 말합니다. 내가 잘나서 이룬 것이 아니라, 허락된 은혜라는 것을 아는 태도입니다. 3. 현재를 누리라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이라... 이것도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도서 3:12-13)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전도서 12:1) 인생이 헛되고 죽음이 불가피하다면 소망없이 살아야 할까요? 솔로몬은 오히려 그 반대로 말합니다. 주어진 오늘을 기쁘게 누리라 고 합니다. 삶은 잠시 주어진 선물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몫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자의 태도입니다. 그는 무절제한 쾌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 담긴 기쁨을 인식하고, 욕심을 줄이며, 하루...

하나님께 이끌리는 삶 - 찬송가 312장을 통한 나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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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이끌리는 삶 - 찬송가 312장을 통한 나의 고백 주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 이끌리어 살아가는 사람이길 원합니다. 일평생 주님만을 바라보며, 세상의 유혹과 어려움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주님은 제 삶이 어렵고 힘들 때 힘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주님은 저를 지켜주시고, 넘어지지 않게 붙드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을 믿을 때 그 반석 위에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고 소망하며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 헛되지 않음을 압니다. 주님의 뜻과 사랑에 만족하며,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참된 신앙임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제 마음의 소원을 아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주어진 본분을 힘써 다할 것입니다. 이것이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임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은혜가 제게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참되고 의지하는 자를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 약속의 말씀 위에 저의 삶을 세워가겠습니다. 주님, 저는 이 고백을 통해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주님보다 먼저 두지 않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겠습니다.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겠습니다. 매일 찬양과 기도로 주님께 나아가겠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소망 중에 살아가겠습니다. 이 모든 고백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아멘.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일평생 주만 바라면,  너 어려울 때 힘 주시고 언제나 지켜 주시리"  - 찬송가 312장 1절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다'는 교만인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겸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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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할 수 있다. 내 힘으로. 내 계획대로.”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작아진다. 언제부턴가 ‘은혜’ 대신 ‘성과’가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겸손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잘한 것이 있어도 내 것이 아니며, 부족함이 있어도 끝이 아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채우심을 기다린다. 삶의 중심에 내가 아닌 하나님이 계신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숨 쉬는 것조차 은혜이고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붙드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분을 바라볼 때, 나는 크지 않지만 존귀하고, 연약하지만 결코 버려지지 않은 존재임을 알게 된다. ***

바람이 불지 않으면 파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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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지 않으면 파도도 없다 삶의 변화와 고요함, 시련과 성장에 대한 깊은 성찰 모든 변화에는 원인이 있다 바다 위의 파도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 뒤에는 언제나 바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원동력이 있다. 우리 삶도 그렇다. 감정의 요동, 관계의 갈등, 뜻밖의 사건들… 그 모든 파동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바람이 분다. 우리는 종종 그 현상 자체에만 시선을 빼앗긴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파도 너머의 바람을 읽는다. 그 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오는가? 무엇을 일으키고 있으며,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 “겉으로 드러난 파도에만 집중하지 말고, 그 바람을 느껴보라.” 삶의 패턴을 이해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며, 더 깊은 차원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는 단지 문제 해결을 넘는 성찰의 지혜 다. 고요함은 준비의 시간이다 삶이 너무 잔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날들. 성장도, 도전도, 변화도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그러나 바람이 멈춘 바다는 죽은 바다가 아니다. 그곳은 다음 파도를 위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고요한 수면 아래서는 여전히 생명이 꿈틀대고, 때가 되면 다시 거센 파도로 깨어난다. 우리의 고요한 시기도 마찬가지다. 그 시간은 성찰과 회복, 준비의 시간 이다. 성급하게 변화를 만들려 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며 내면의 힘을 축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련은 성장의 촉매이다 거센 파도는 강한 바람이 있다는 신호다. 그 바람은 때로 우리에게 시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 시련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연단 이다. “바람은 때론 시련이지만, 그 시련이 없다면 파도 또한 없을 것이다.” 평온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선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폭풍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키를 잡아본 이만이 진정한 항해술을 익힌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인격과 믿음, 역량은 고난의 바람 속에서 단련된다.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 바람에 몸을 실어 더...

샬롬(Shalom)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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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샬롬(Shalom)의 능력 한 목사님이 있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샬롬"이라고 인사했다. 히브리어로 '평화', '평안하라'는 뜻이다. 어느 날 얼굴이 시꺼멓고 뼈만 앙상한 남자가 지나갔다. 목사님은 평상시처럼 "샬롬!" 하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그 사람은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다. 3개월쯤 지나자 그가 목사님께 식사를 제안했다. 식사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업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몸이 나른해지고 얼굴이 시꺼멓게 변했다. 병원에서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3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죽을 놈"이라고 여기는 상황에서 목사님이 "살 놈!"이라고 인사한 것으로 들렸다는 것이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죽을 놈이 아니고 살 놈이다." 이런 생각으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자신감을 갖고 운동하며 잘 먹고 쉬었다. 결국 말기 간암을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샬롬!"을 "살 놈!"으로 알아들었는데, 진짜 샬롬의 역사가 실현된 것이다. 우리도 이제 "샬롬"을 전하자. ***

[시] 인생, 소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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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소풍처럼 어릴 적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었다. “공부해라, 좋은 대학 가야지. 좋은 직장 얻고 성공해야 사람답게 산단다.” 그 말들이 삶의 나침반처럼 손에 꼭 쥐어진 채 그렇게 걸어왔다. 하지만 길 위를 오래 걷다 보면 조용히 속삭이는 하나의 깨달음이 찾아온다. 우리네 삶은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삶의 여정은 결승선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풀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결, 함께 걷는 이의 소박한 웃음 같은 것이다. 소풍을 떠난 아이처럼 도착보다 가는 길이 더 아름답고, 성과보다 순간의 설렘이 더 소중하다. 물론 일도 해야 하고 무언가를 이루어야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닫는 순간, 마음이 한 뼘쯤 가벼워진다. 지금 이 숨결, 이 만남, 이 하루가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세상은 결과로 측정할 수 없는 기쁨들로 가득하고, 길은 걸어서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 걸으며 살아내는 여정이라는 것을. *** ***

결국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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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과 빈손 사이, 우리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 디모데전서 6:7과 '공수래 공수거'를 바라보며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디모데전서 6:7)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동양의 격언) 모두 인간은 빈손으로 태어나고, 빈손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 유사성 너머에는 전혀 다른 삶의 방향과 세계관 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결국 빈손으로 끝나는 여정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들고 태어나지 않았고, 죽을 때도 그 어떤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이는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인생의 본질입니다. 그렇기에 삶의 참된 의미는,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웠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진리를 전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적으로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라 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디모데전서 6:7 ― 하나님을 향한 시선으로 살아가기 사도 바울은 이 무소유의 진실을 단순한 허무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회복하라 고 권면합니다. 영원을 기준으로 현재를 살라 이 땅의 소유는 잠시지만,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뜻 을 향해 살아야 합니다. 경건과 자족의 길 “경건에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큰 이익이 되느니라”(6:6) 하나님 안에서의 만족, 그것이 진정한 부요함이며, 그것이 우리가 채워야 할 삶의 내용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는 수동적인 체념이 아니라 능동적인 믿음의 삶 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며, 영원한 가치로 오늘을 살아가라는 초대입니다. 공수래 공수거 ―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철학적 태도 동양의 격언 “공수래 공수거”는 불교와 유교 사상 속에서 삶의 덧없음을 관조하는 말로 전해져 왔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라 인생의 무상함을 받아들이며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지혜라는 가르...

[한몸 기도편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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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 조지 허버트 A wise man cares not for what he cannot have. - George Herbert 지혜로운 사람은 헛된 욕망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의 부와 명예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음을 알기에, 영원한 것을 추구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려고 애쓰는 것들이 오히려 영혼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압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만족과 기쁨을 찾으며,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라는 말씀을 삶으로 살아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보느라 현재 주어진 은혜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삶은 평안하고, 그의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깊은 쉼을 누립니다. *** * 이 < 한몸기도편지 > 는  한동대학교 학생들이 시작한 " 한몸 프로젝트(ONEBODY Project) "를 진행하는 " 한몸팀"으로부터 메일로 받은 내용입니다.

한결같음, 그 고요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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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결같음, 그 고요한 힘 세상은 빠르게 변합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쉽게 움직이고, 관계는 가볍게 시작되어 쉽게 끝나기도 하지요. 트렌드는 하루가 다르고, 가치관은 그때그때 바뀝니다. 그런 시대에 한결같음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변화 속에서 피어나는 단단함 한결같음은 고집이 아닙니다. 변화를 외면한 채 제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진정한 한결같음은 유연함 속의 강인함 을 품고 있습니다. 약속보다 깊은 마음 약속을 지키는 건 기본일지 모르지만, 한결같음은 약속하지 않은 것들까지 지켜내는 마음 입니다. 매일의 안부, 지치고 힘들 때 곁을 내주는 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관심. 이런 것들은 계약서에 적힌 적도 없고 보상도 없지만, 한결같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해냅니다. 시간 위에 드러나는 진심 한결같음은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드러납니다. 처음 몇 번의 다정함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몇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심은 드물지요. 좋을 때뿐 아니라 서운하고 지칠 때도 여전히 곁에 있는 사람. 그 마음은 시간이 증명해 줍니다. 작은 일상 속의 위대함 한결같음은 특별한 순간보다 작은 일상 속에 더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매일 아침의 인사, 늘 같은 말투와 미소, 지켜지는 습관과 태도. "오늘도 똑같네." 이 말이 비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그 ‘똑같음’ 속에는 예측 가능한 따뜻함 과 믿음직한 위로 가 있습니다. 정체가 아닌, 성숙 한결같음은 변하지 않음이 아니라, 변화하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것 입니다. 사랑도 그렇지요. 처음의 설렘은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더 깊어진 이해와, 더 단단해진 신뢰가 자리 잡습니다. 그렇게 달라지면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 — 그것이 한결같음의 진짜 얼굴입니다. 한 사람의 한결같음이 세상을...

[시] 사랑은 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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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품는 것이다 사랑은 그저 스치듯 안는 것이 아니라 온 영혼을 열어 무한히 품는 것이다. 삶이라는 거친 폭풍우를 껴안을 때 고통이 장대비처럼 쏟아져도 사랑하기에 기꺼이 그 빗속에서 춤춘다. 사랑은 입술의 떨림보다 먼저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속삭임. 심장은 별들의 멜로디를 품고 뛰고 그 박동 속에 우주의 숨결이 흐른다. 사랑을 품으면 얼어붙은 겨울바람도 한 편의 자장가처럼 지나가고 그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은 봄볕처럼 따스해진다. 누군가의 어둠 속에서 조용한 등대가 되어주는 것 흔들리는 마음에 말 없는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 지닌 가장 깊고 성스러운 힘 온 세상을 품고도 여전히 더 사랑할 수 있는 무한한 깊이인 것이다. ***

삶의 남은 여정은 인생의 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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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남은 여정은 인생의 황금기 1.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함을 누리는 시간 젊은 날의 분주함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이제는 고요한 마음으로 머물며 더욱 선명하게 듣습니다.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친밀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깊은 기쁨이며 세상의 그 어떤 성취보다 소중한 보물입니다. 2.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쌓아가는 삶 지나온 인생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주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감사의 무릎을 꿇고, 진실한 회개의 고백도 함께 올려드립니다. 이는 단순한 신앙적 의례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을 정리하고 거룩하게 드리는 영적 유산을 쌓는 거룩한 작업입니다. 3.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는 거룩한 사명 화려한 말보다 진실한 삶으로, 직접적인 충고보다 간절한 기도로, 내가 걸어온 믿음의 길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이는 자녀와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며, 세대를 이어가는 신앙의 생명력입니다. 4. 겸손히 섬기는 지혜로운 조언자 오랜 세월 쌓아온 삶의 경륜을 바탕으로 교회와 가정, 공동체를 세우는 지혜로운 조언자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때로는 많은 말보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그러한 ‘존재의 위로’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5. 여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체념의 말 대신 “하나님, 아직도 저를 사용하실 일이 있으신가요?”라고 묻는 겸손한 기도를 드립니다. 노년에도 주를 찬양하는 입술, 중보하는 기도의 손, 위로의 말 한마디가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며, 여전히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귀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  노년의 삶은 인생의 마지막 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깊고 성숙한 열매를 맺는 영적 황금기입니다. 세상의 눈에는 쇠퇴의 시간일지 몰라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가장 풍성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시] 세월이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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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남긴 것들 > 흐르는 물처럼 세월은 돌아오지 않고, 스쳐간 인연도 다시는 찾기 어렵다. 봄은 해마다 오건마는 한 번 온 늙음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청춘은 불러도 머물지 않고,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이 모두 헛된 것은 아니다. 주름마다 살아온 이야기가 있고, 흰 머리카락엔 세월의 지혜가 깃든다. 세월을 되돌릴 수 없기에 더욱 소중하고, 다시 오지 않기에 더욱 아름답다. 오늘 이 순간도 언젠가 그리운 추억이 될 것이다. ***

“사유하기 보다는 행동하라” - 머리로가 아니라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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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기 보다는 행동하라” -  머리로가 아니라 삶으로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기독교인으로 실존한다는 것은 기독교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기독교에 대해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아무리 신학을 연구하고 교리를 암송한다해도, 그 삶을 살아내지 않으면 신앙은 머릿속 지식에 머물고 만다. 진짜 기독교인은 말과 생각에 머무르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길을 따르며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키르케고르가 강조한 것은 바로 이 ‘실존적 도약’이다. 신앙은 안전한 이론의 영역에서 불확실한 삶의 영역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돌보고, 상처받은 자를 위로하며, 용서하기 어려운 자를 용서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머리로 다 이해되기 전에 먼저 행동 으로 옮겨져야 한다. 자신이 믿는 바를 삶으로 증명하려 할 때, 하나님은 그 위에 은혜를 더하신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다. 묵상보다 실천이 먼저다. 그리고 그 실천 속에서 믿음은 살아 움직이고 자라난다. 신앙은 모든 걸 다 알고 나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비록 불완전한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 그 한 걸음이 진정한 기독교인의 모습이다. ***

기도하려면 그리고 기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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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려면 그리고 기도하면 기도는 쉬운 듯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분주한 일상에 치이고 마음이 흐트러질수록 가장 먼저 소홀해지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선택이 아니라 생명 입니다. 기도하려면 ,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영적인 민감함이 필요하고, 삶의 중심을 다시 하나님께 맞추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삶을 단순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 치게 됩니다. 기도의 자리는 분주함 속에 멈추는 ‘쉼표’요, 하나님께 다시 초점을 맞추는 ‘중심축’입니다. 기도하면 , 하나님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막혔던 마음에 평안이 흐릅니다. 기도는 단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기고 그분의 뜻에 참여하는 거룩한 동행입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싸움의 승패는 결정됩니다. 나라와 민족, 열방을 위한 중보의 자리가 세상을 움직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무기이며, 믿음의 호흡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임합니다. “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골4:2)

인생의 답이 오직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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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답이 오직 여기에 있다 길을 잃은 마음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느 날 문득 삶이 방향을 잃은 듯 느껴질 때가 있다. 바쁘게 살아도 허무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도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말한다. " 건강하기만 하면 행복할 거야. " 또 다른 이는 "성공하면 공허함도 사라질 거야." 하지만 그런 조건들이 충족되어도 마음 깊은 곳의 갈증은 여전하다. 왜일까? 이런 공허감의 원인을 찾는 것은 단순한 인생 상담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존재 자체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잘 살아도 길을 잃은 것이다. 중심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한 목회자는 말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라면, 그분은 내 인생의 주님이 아니다." 이 말은 우리의 신앙이 단지 삶의 한 조각, 도구 혹은 보조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필요할 때 도와주는 존재'로 오해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그분은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라 삶의 중심이자 전부라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내 방식대로 인생을 운영하고 있다면, 그 신앙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주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무너질 수밖에 없다. 중심이 흔들리면 삶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 예수께서는 직접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길을 잃은 자에게는 방향이 필요하다. 진리를 찾는 자에게는 확신이 필요하다. 삶의 의미를 찾는 자에게는 생명이 필요하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수많은 '답처럼 보이는 것들'에 기대어 살아간다. 돈, 명예, 관계, 지식, 건강… 하...

🌿 삶의 회복탄력성, 그 길 위에서 - 인생 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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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길을 걷다 보면 때로는 거센 바람이 우리를 향해 불어옵니다. 그 바람 앞에서 우리는 비틀거리고, 넘어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바람은 우리를 쓰러뜨리려 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내면을 단단하게 다듬어주는 묵묵한 스승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햇살조차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시간을 지날 때도 있습니다. 세상이 온통 어둠에 잠긴 것 같고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기만 하지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작은 촛불 하나가 어두운 방 전체를 밝혀낼 수 있다면, 그 소박한 빛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때로는 작은 희망의 불씨가 거대한 어둠을 이기는 힘이 되어줍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언제나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척박한 환경 앞에서 우리는 종종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돌밭이든, 꽁꽁 언 동토이든 작은 풀씨 하나는 그 어떤 땅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푸른 싹을 틔웁니다. 생명의 힘은 조건을 탓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만의 꽃을 피워냅니다. 어쩌면 가장 힘든 것은 마음의 외로움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이 긴 길을 나 혼자 걷고 있는 듯한 쓸쓸함이 마음을 물들입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조차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일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세상 너머의 절대자와 마주 앉는 조용한 기도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외로움은 우리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만남으로 이끄는 또 다른 길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걷습니다. 바람이 불어와도, 어둠이 찾아와도, 외로움이 스며들어도 말입니다. 그 모든 길 위에서 다시 피어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믿으며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이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시련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성장의 과정입니다. ...

감사기도 《은혜(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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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Eric Enstrom 이 1918년에 촬영한 유명한 사진 작품 《 은혜(Grace) 》입니다. (흑백 원본을 후에 컬러로 재현한 것임.) 한 노인이 식탁 앞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 성경, 빵 한 조각, 그릇 등이 놓여 있습니다. 감사와 경건한 삶, 소박한 신앙, 겸손한 마음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공식 주 사진(State Photograph)으로 지정될 정도로 국민적 애정을 받고 있습니다.

"믿음(faith)이란 감정(feeling)이 아니라 사실(fact)을 따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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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faith)이란 감정(feeling)이 아니라 사실(fact)을 따르는 것

다윗 언약과 그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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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윗 언약과 그 성취

상처가 있는 것들이 더 멀리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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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처가 있는 것들이 더 멀리 날아간다 인생을 오래 살다 보면 누구나 마음에 하나쯤은 깊은 흠집을 지니고 살아간다. 젊은 날의 실수, 예기치 못한 질병, 자녀 문제, 때늦은 후회 그리고 말 못할 상처들까지. 그런데 골프공의 딤플(Dimple)을 아는가? 그 작고 촘촘한 홈들 덕분에 골프공은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간다. 상처처럼 보이지만, 그게 오히려 공기 저항을 줄이고 비거리를 늘리는 비상의 비밀 이 된다. 처음엔 그런 딤플이 없었다. 그저 공을 치다 상처 난 헌 공이 새 공보다 더 잘 날아가는 걸 보고, 사람들이 깨달은 것이다. "상처가 때론, 새 힘이 될 수 있구나." 이제는 안다 싶은 나이, 그런데 여전히 흔들리는 마음 고단한 현실 앞에서 우린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쯤이면 나도 쉴 자격이 있지 않나… 더는 버티기 어렵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 시점에서 딤플을 본다. 병약함이 오히려 건강을 돌아보게 했고, 학벌보다 배우려는 자세가 더 깊은 지혜가 되었고, 외모나 배경보다 신앙의 향기 가 사람을 살렸다는 걸 삶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딤플러(Dimpler)가 되는 것 딤플러 란, 그 상처의 자리에서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더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 이다.  바울이 이렇게 고백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나의 약함을 자랑하리라.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될 때,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 이라는 것을 이미 인생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역사가 증명하는 딤플의 힘 루즈벨트는 소아마비를 이기고 미국을 네 번이나 이끈 지도자가 되었고, 스티븐 호킹은 육체는 불편했지만 지성으로 우주를 열었으며 ,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았을 때 가장 위대한 곡들을 남겼다. 우리의 딤플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인생의 상처는...

누구에게나 왕년은 있지만 우리의 영원한 소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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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찬란함 그리고 영원한 소망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간직된 ‘왕년의 시절’이 있습니다. 그 시절은 반드시 화려하거나 특별한 업적이 있었던 때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밤새워 꿈을 나누던 청춘의 한때였고, 또 어떤 이에게는 아이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던 평범한 하루였으며, 누군가에게는 가난했지만 서로를 아끼며 살았던 따뜻한 계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때로는 그리움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깨닫게 됩니다. 그 모든 순간들도 결국은 스쳐 지나간 안개와 같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의 인정, 세상의 성취, 기억 속의 추억 등 아무리 빛나 보였던 것들도 영원한 위로가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진실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시선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 영원한 반석 되신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세상은 흔들리고 사람의 마음은 변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며, 참된 위로와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과거의 찬란함에만 머물지 않고,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 안에서 ‘또 다른 왕년’이 될 수 있음을 믿고 살아갑니다. 세상의 빛이 아니라 주의 얼굴에서 비추는 빛을 소망하며, 내 계획이 아니라 주의 뜻 안에서 이루어질 미래를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62편 2절) 지나간 날들에 감사하고,  오늘의 순간을 믿음으로 살아내는 삶.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더욱 깊어지는 찬란함의 길입니다. 이제는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길 원합니다. ***